지방자치단체장 당선자들의 입에서 ‘재검토’ ‘백지화’라는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전임자의 정책과 단절하겠다는 뜻이다. 경제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치적용·전시성 사업이라면 철회하거나 변경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정책에는 일관성과 연속성이 중요하다. 시민 생활과 직결되거나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은 더욱 그렇다. 시장·군수가 바뀔 때마다 모든 걸 뒤엎는 급격한 변화는 예산 낭비와 혼란, 행정 불신을 부를 수 있다.
안병용 의정부시장 당선자는 70%나 진척된 의정부 경전철 공사를 재검토하겠다고 나섰다. 현 시장이 4년 전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뒤 추진해온 사업을 손보겠다는 것이다. 노선 변경 등 필요할 경우 이미 완공된 구간을 부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한다. 시청을 믿고 50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한 민간사업자는 물론 그에 따른 재정적 손해와 부작용이 만만찮다.
김학규 용인시장 당선자는 한국외대 캠퍼스 안에 건설 중인 영어마을의 공사를 중단할 방침이다. 건축비를 부담하는 용인시가 지원을 끊으면 공사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내후년 2월 개원을 준비해온 대학과 인근 주민들은 황당해하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 당선자는 청사 건물을 민간에 매각하고, ‘검소한 새 청사’를 짓겠다고 했다. ‘호화 청사’라는 비난을 사온 점은 이해되지만 용도를 쓰임새 있게 변경하려는 노력도 없이 청사를 또 짓겠다는 발상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다.
광역자치단체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경남에선 남해안시대 프로젝트, 제주도에선 서귀포헬스케어타운 조성, 대전에선 엑스포과학공원 재창조 사업, 충북에선 오송 메디컬 그린시티 사업 등 전임자의 중점 사업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퇴출’을 기다리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당선자가 조만간 4대강의 하나인 금강 살리기 사업의 공사 중단을 정부기관에 공식 요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자신의 공언대로 4대강 사업에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려는 의도다.
금강 수계의 7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4개 지역 단체장 당선자는 금강 사업에 찬성 또는 조건부 찬성 의견을 보이고 있다. 안 당선자가 기초지자체와 주민의 뜻을 거스르고 정부와 계속 충돌하다 보면 정부가 금강 사업을 포기하고 낙동강 영산강 한강에서만 사업을 벌이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 그 피해는 충남도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4대강 사업은 중앙정 부 차원의 중대한 국책사업이다. 하천법(3조)은 국가에 대해 ‘하천의 효율적인 보전 관리를 위한 종합적인 계획 수립 및 시책 마련’의 책무를 부여하고, 지자체에 대해서는 ‘국가의 시책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지자체장에게는 중앙정부의 하천 관리에 협조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지자체의 역할은 헌법(117조)과 지방자치법(8조)에 명확히 규정돼 있다. 헌법은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 처리’ 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 제정’을 명시하고 있다. 지방자치법은 ‘지자체는 법령이나 상급 지자체의 조례를 위반해 사무를 처리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안 지사가 대형 국책사업에서 타협점 없이 충돌하다 보면 정작 중앙정부의 협조를 필요로 하는 세종시나 다른 지역발전 사업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는 정부의 방침을 어기고 인천시 독자적으로 남북교류사업에 나서겠다고 했다. 민주당 소속 서울 21개구 구청장 당선자들은 ‘오세훈 시정(市政)’에 대한 견제를 공동 결의했다. 물론 보완할 필요가 있는데도 대책 없이 전임자의 정책을 승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단순히 전임자의 작품이란 이유만으로 주요 사업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단체장의 역할을 행정 90% 정치 10%’라고 한 박준영 전남도지사의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 야권 당선자들은 취임 이전에 헌법과 지방자치법부터 먼저 숙지하고 주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숙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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