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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한오벽 |
2010년09월08일(Wed) |
| 안용호<논설위원,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담당장학관> |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다가 경인지역의 아파트를 보면서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어르신들은 이렇게 변해버린 세태를 ‘상전벽해’라 했지만 그 말마저 부족할 정도로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변했다. 차라리 천지개벽을 했다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검정고무신에서 유비쿼터스까지 우리의 일상은 너무 많이 변했다. 소주코너에 앉아도 골프 이야기와 주식 이야기, 정치 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생활이 몰라보게 달라지고 좋아진 것이다.
이렇게 생활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상류층이 생긴다. 어느 사회든 상류층은 시간과 돈이 있다. 시간과 돈이 있는 사람들을 ‘유한계급’이라고 부른다. 노장사상이 오늘에 되살아날 수 없는 한 한가하다는 것은 돈과 시간 모두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시간과 돈 중 한 가지만 있으면 유한계급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이 유한계급에 해당할까? 우리나라의 유한계급을 상징하는 증표는 대략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골프장에 자주 간다. 온 국토를 파헤쳐 골프장을 만들고, 자리에 앉으면 골프 이야기이다. 소주코너에서 어떤 사람이 골프이야기를 귀가 아프게 했는데 알고 보니 18홀의 컨트리클럽 골프장이 아니라, 망을 쳐놓은 골프연습장에 갔다 와서 호들갑을 떤 것이어서 박장대소했던 일이 있다.
골프는 좋은 운동이다. 골프장에 접근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최소한 대여섯 시간이 소요되는 운동이다. 또 돈과 시간이 없으면 불가능한 운동이 골프다. 그래서 일상에서도 골프에 대한 소재를 가지고 한두 시간씩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우리들에게는 골프가 유행병처럼 번져가는 아쉬움이 있다. 골프화를 신고, 골프 옷을 걸치고, 골프 수건까지 쓴다. 탁구가 유행하더니, 테니스가 유행하고, 이제 우리에게 전혀 맞지 않은 골프가 대유행인 것이다.
둘째는 명품 쇼핑이다. 시계, 핸드백, 의상 등에서 반드시 명품 브랜드가 발견되어야 한다. 명품을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짝퉁일망정 명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명품 휴대는 가장 쉽게 유한계급과 서민을 구분하는 단서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특이한 명품을 제대로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 명품 매장에 대한 정보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좋다.
프랑스에 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명품을 세 개 이상 팔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명품이 나오면 보자마자 싹쓸이를 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명품의 가치가 없어져서 안 판다는 것이다. 방송을 보고 안 일인데 명품의 제작비는 3만 원이 넘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의 명품 쏠림 현상은 과시욕이거나 병리현상일 것이다. 강남의 장독대에서 돈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이 발견되는 세상이니 명품을 가지고 다닌다고 해서 좋아할 일은 아닌 것이다.
셋째는 특급호텔 레스토랑을 자주 이용해야 한다. 점심이나 저녁 약속을 일반 음식점이 아닌 특급호텔에서 해야 한다. 잠을 자려고 호텔에 가는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기 위해서 특급 호텔을 많이 이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면 왜 이곳을 이용하는가? 이곳의 음식 값은 비싸지만 북적거리지 않고 쾌적하다는 장점이 있다. 필자가 아는 동생이 호텔에서 아이들 결혼식을 하기에 놀란 적이 있지만 돌잔치도 호텔에서 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넷째는 해외여행이다. 1년에 서너 번, 그러니까 계절별로 한번씩은 해외여행을 할 수 있어야 유한계급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하는 곳도 여행사의 판박이 관광 코스보다는 앙코르왓트 같은 문화 유적지나 잘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곳을 택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곳들은 사람이 많지 않고, 여유로우며, 한가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제 해외여행은 누구나 가는 필수 코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갤러리다. 갤러리를 소유하고 있거나 갤러리를 자주 출입하면서 인구에 회자되는 미술품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유한계급에 속할 수 있다. 갤러리를 출입하는 여성들을 유심히 보면 ‘나, 교양’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다. 앞의 네 가지 증표보다도 이 다섯번째 증표인 갤러리가 최근 우리나라의 상류층을 규정하는 가장 확실한 준거가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신정아의 성곡미술관, 행복한 눈물의 서미 갤러리와 리움이 집중적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 같다.
이 다섯 가지를 벽(癖) 수준으로 즐기면 우리나라의 상류층이 틀림없다. 여기에 외제차를 타고, 카드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80평 이상의 아파트에서 가정부를 두고 있으면 금상첨화라 할 것이다. 단 이런 것을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이제 학교에서는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깊이있게 가르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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