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상생의 파트너십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 제목의 편지를 설동근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이 진보교육감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A4 용지 3장 분량의 편지를 받은 교육감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보도를 읽으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며칠 전 새 학기를 맞아 실시하는 3월의 교과학습 진단평가를 놓고 갈등을 빚은데 놀랐는데, 소모적 논쟁으로 학생들만 골탕을 먹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동안 우리 교육은 많은 갈등을 겪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교육정치화 되면서 하는 일마다 갈등을 빚고 있어서 큰 문제이다.
이명박 정부는 3년 전 출범 당시 교육정책에서 ‘자율과 경쟁’ 두 가지 큰 원칙을 내세우고, 학교에 대한 획일적 규제를 걷어내 자율성을 부여하고 경쟁을 통해 세계적인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공언하며 출발했다. 잘 나가는가 싶던 교육이 방향을 틀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외국어고 정원 축소, 자율고 추첨 선발 등의 주요 정책은 정부 규제와 개입을 강화하고 우수 학생들 사이의 경쟁을 줄이는 데 주안점을 두는 쪽으로 움직인 것이다. 그러니까 자율과 경쟁에 부합하는 시책인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 도입에서도 갈등을 빚었다.
사실 우리 교육의 고질병은 대학 입시에 목매는데서 출발한다. 이제 대학 입시만은 걱정이 없겠다고 생각했던 우리 앞에 정부가 내 놓은 입시안은 기대와 사뭇 다르다.
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역별 만점자가 1%까지 나오도록 시험을 쉽게 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더하여 교육과학기술부는 고교 내신을 현행 9등급 상대평가에서 A-F의 6단계 절대평가로 바꾸는 방안을 내놓았다. ‘물 수능’에 ‘물 내신’까지 예고되자 대학들은 논술 면접을 강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정부는 사교육을 유발한다며 ‘하지 말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물론 공부는 안 가르치면서 우수인재만 선발해가려는 대학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정부의 변별력을 잃은 입시제도는 학습자의 내적 학습동기를 약화시키고 사회적으로 국가경쟁력을 후퇴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만약 이것이 대학의 재량권을 대폭 키우는 방향이라면 어느 정도 수긍은 간다. 그렇지만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절대평가였다가 학교들의 성적 부풀리기가 문제된 점을 감안하면 교육의 본질이나 철학적 차원의 고민이 아니라 입시제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땜질식 방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 교육과학기술부는 ‘공교육강화-사교육 경감 선순환 방안’ 시안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수학 과목에서 단순암기나 문제풀이식 내용은 줄이겠다는 내용과 시험에서도 문제풀이나 계산 위주보다는 풀이 과정을 볼 수 있는 서술형 평가 비중이 커진다는 바람직한 방안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방과후학교에 민간 교육기업의 참여가 늘어난다는 대목도 있어 배꼽을 잡게 한다. 오죽 딱했으면 이런 시책이 나왔을까마는 방과후학교 민간 위탁이 공교육강화의 핵심 방안은 아니다. 방과후학교 교육은 역대 대통령이 학습자들의 교육적 부담이 과중하다고 실시를 하지 않았던 시책일 뿐만 아니라 부작용이 너무 큰 교육활동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방과후교육활동 성과 발표회가 대전에서 있었는데 대통령의 치적으로 발표하는 것을 보고 웃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어떻든 지금까지 쭉 정부들이 내 놓은 교육적 시책들은 정치적 정책들이었기 때문에 교육의 질을 낮추고, 시간과 양을 늘이며, 미봉책에 그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정부의 공교육 강화-사교육 경감 선순환 방안은 너무 허술하다. 수능 EBS 연계로 대입 사교육 유발 최소화는 더 웃긴다.
‘진보교육감들 ‘일제고사’ 학교 자율로’ 라는 헤드라인으로 전국 일제 시행으로 학교·학생 간 성적경쟁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었던 교과학습 진단평가가 올해는 지역에 따라 학교 자율로 치러질 것이라고 한다. 사실 진단평가는 학교장이 알아서 신학년도의 교육계획을 수립할 때 실시하도록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 옳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차관이 편지를 보내도 반응이 없는 것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있고, 교육철학의 빈곤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고 보여진다. 무엇보다도 교육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있지 않았을까 서로 반성해 볼 일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 내 자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즐겁게 공부하게 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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