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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그림 읽기 |
2011년03월09일(Wed) |
| 안용호<논설위원,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담당장학관> |
교실 복도에 걸려있는 밀레의 ‘이삭줍기’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교장선생님께서 “그거 일본놈들이 우리 혼을 빼놓으려고 걸어 놓은 거여”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지는 설명은 프랑스에서 3류 화가도 못 되는 밀레의 그림을 걸어 놓은 것은 그 그림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기 위한 식민지 정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 후 ‘미술 작품도 그냥 스쳐보기만 해서는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우리 옛 그림 보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공부하면서 우리 그림을 자세히 보니 이치에 맞지 않은 일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실제 있지 않았던 일이 마치 있는 것처럼 가상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고금을 통하여 동일한 형식의 그림이 계속 그려져 왔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미술을 전공하는 학자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았다.
목련꽃에 해당화를 그리는 일, 모이를 주고 있는 어미닭에 암탉이 아닌 장닭을 그리는 일, 오리는 버드나무 밑에 두 마리를 그리는 일, 백로는 한 마리만 그리는 일, 신선도에는 여러 명의 신선이 한 화면에 등장하는 일 등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그림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 것을 잊어버리고 서구적인 방법이나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는 일이 켜켜이 쌓여서 버릇이 되어 버린 결과인 것이다. 우리 것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구적으로 순치된 사고의 소산인 것이다.
우리 동양에서는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뜻을 문구로 미리 정하고 이 문구와 발음이 같은 사물을 택하여 그림으로 그리는 방식을 택하여 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동양의 그림은 읽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읽는다는 말은 그림을 글자로 바꾸어 본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림을 문자 또는 문장으로 바꾸어 읽는 그림이 많았다. 화조도, 기명절지도, 초충도 외에 산수화에도 적용되는 것이 많았다. 이런 것은 일제와 더불어 유입된 서양미술 사례에 가려져 오늘날에 와서는 대부분 잊혀진 상태다. 그래서 우리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읽는 그림의 예를 보자. ‘시든 연못에 백조 두 마리’의 그림을 읽으면 ‘일로연과’가 되어 ‘한 걸음에 향시와 전시 두 번의 과거에 연속 등과하라’는 뜻이 된다. 폐백 때의 대추와 밤도 원래는 ‘빨리 임신하라’는 뜻이었다. 어려서 결혼을 시켰기 때문에 그런 희망을 담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대추는 아들로, 밤은 딸로 둔갑하였다.
그렇다면 우리의 그림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옛 그림을 볼 때 그려진 사물 이름을 동음이자의 문구로 바꾸어 읽고, 그려진 사물이 갖고 있는 우화적 의미를 살펴 그대로 읽으며, 그려진 사물과 관련된 고전적 문구를 상기하여 읽어야 한다고 미술사가들은 말한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영향을 받아 화풍도 중국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와서는 우리의 독특한 화풍을 나타내 오히
려 중국의 그림을 앞서가는 느낌을 받는다. 동음이자의 문구로 바꾸어 읽을 그림의 예를 몇 개만 들면 다음과 같다.
까치와 호랑이의 그림은 ‘신년보희’의 뜻으로 ‘새해를 맞아 기쁜 소식만오다’는 뜻이 된다. 중국에서는 표범을 그렸는데 우리나라에 와서 호랑이로 바뀌었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게 두 마리와 갈대’ 그림은 ‘두 번 모두 장원급제해서 임금이 내리는 음식을 받으라’는 의미가 된다. 사슴 백 마리가 그려 있으면 ‘백록’으로 읽어 온갖 복록을 뜻한다. 대나무와 바위를 함께 그리면 회갑 축하의 뜻인 ‘축수’로 읽는다. 여름 난초에 가을 귀뚜라미를 그리면 ‘자손이 관에 들다’는 뜻이 된다. 갈대와 기러기는 ‘노안’이라고 편안한 노후를 뜻한다.
우화적 의미로 읽는 예를 몇 개 더 들어보자. 연못에 원앙이 노니는 그림은 연생귀자도가 된다. 오복은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살고, 편안하게 살고, 덕을 베풀기 좋아하며, 하늘이 준 수명을 다 마치는 것이었다. 이 오복을 그린 것이 많다. 석류 그림은 다자도이다. 모란꽃이 있으면 부귀로 읽는다. 학을 그린 그림은 천수도이다. 매화 가지에 달이 걸려 있으면 ‘미수상락’으로 눈썹이 하얗게 새도록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는 뜻이 된다. 새우를 그리면 만만순으로 읽고 매사가 순조롭게 된다는 뜻이 된다. 수도 없이 많다.
아! 우리 그림에 이렇게 깊은 뜻이…. 그림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는 우리 조상들의 숨결과 창조적 생각이 배어 있어 세계적 자랑거리가 된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보여준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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