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간부 몇 명이 로널드 레이건을 찾아갔다. 이들은 다짜고짜 “내년 주지사 선거 후보가 돼 달라”고 했다. 레이건은 “당신들 돌았느냐”며 웃었다. 그는 민주당원에서 공화당원이 된 지 3년이 채 안 된 신참 처지였다. 그러나 당 사람들은 “작년 대선 때 당신이 골드워터를 지지하는 TV연설을 하며 가장 확실하게 공화당의 보수주의 철학과 정책을 홍보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열렬한 민주당원 레이건은 1940년대 ‘영화계 공산주의자들이 소련을 위해 갖은 책략을 쓰는 걸 보고’ 반공 보수 쪽에 섰다. 그는 50년대를 ‘공화당 공부’로 보냈다. 미국 역사책과 하이에크 ‘노예의 길’ 같은 자유시장경제 책을 읽었다. 그는 62년에야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꾸고 캘리포니아주지사를 거쳐 대통령까지 됐다.
처칠은 1900년 보수당 하원의원이 된 지 4년 만에 당의 보호관세정책에 반대해 자유당으로 옮겼다. 자유당 사람들은 처칠이 ‘귀족 출신 보수주의자’라며 따돌렸다. 그의 말 더듬는 버릇까지 흉봤다.
그는 상무장관이 되자 어느 급진파 못지않게 강한 사회개혁론으로 자유당 노선에 충실했다. 자유당 정권은 그에게 내무장관, 해군장관을 맡겼다. 처칠은 그러나 1924년 자유당의 노동정책에 반대하며 보수당으로 복귀했다.
처칠은 ‘정치인의 지조’라는 글에서 “당적 변경은 신념이 옳고 공공 이익을 위하는 것이라면 정치인이 따라야 할 의무”라고 썼다. “정치인은 국가에 최선이라고 믿는 바를 실천하기 위해 이전에 믿고 따랐던 원칙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조지훈은 ‘지조론’에서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자는 따를 수도 없다. 변절의 정당화를 위한 공언을 늘어 놓는 것은 분반(먹던 밥 뱉기)할 일”이라고 개탄했다.
정치인들은 정치적 근거와 노선을 바꾸면서 흔히 ‘구국의 결단’과 ‘지지자들의 여망’을 내세운다. 그러나 세계 정치사에서 처칠이나 레이건처럼 정치인의 변신이 성공한 예는 매우 드물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21세기 주몽이 되겠다”며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국민들은 처칠이 말했듯 그가 옳은 신념을 품고 국가와 국민을 모든 것에 앞세워 생각하는 자세를 일관되게 보이는지 지켜볼 것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과 손전지사와 범여권 등이 주창하는 이른바 ‘제3지대’ 등에 대해 현직 대통령과 진보정당 대선주자가 같은 날 나란히 ‘논평’을 내놓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 도중 언급한 ‘보따리장수’와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대학 강연 도중 했다는 ‘우범지대’ 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노대통령은 손전지사를 겨냥해 “경선에서 불리하다고 탈당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면서 “보따리장수같이 정치를 해서야 되겠느냐”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각료들과 함께 국정 현안을 논의하는 국무회의 석상에서 특정 대선주자를 이렇게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분명 도가 지나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원칙이 몇몇 정치인의 정치적 이익 추구로 인해 훼손돼선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 대통령의 발언 내용 자체는 공감할 대목이 있다고 본다.
한편 민노당 노의원은 ‘제3지대’와 관련해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되기 힘드니까 뛰쳐나온 사람, 열린우리당 실정을 책임지지 않고 뛰쳐나온 사람들이 모이는 ‘잡탕·우범지대’로 전락하고 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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