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긴급(응급구호)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처럼 범죄와 화재 신고를 분리한 나라도 있고 통합 운영하는 나라도 있다. 번호도 세 자리가 가장 많지만, 두 자리도 있고 네 자리 이상도 있다. 세 자리 방식의 긴급전화는 영국이 1930년대부터 사용했다. 가장 앞번호인 9를 돌리기 쉽다고 해서 999로 정했다고 한다. 미국과 캐나다는 2차 세계대전 후 영국 방식을 본떠 911로 했다. 한국의 화재·구급전화 119는 일제시대인 1935년 일본식이 도입된 것이다. 당시 전화 교환방식이 수동에서 자동으로 바뀌면서 정해진 114 등 10개 서비스 번호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 범죄 신고전화가 112로 결정된 시기는 불분명하다. 119와 함께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110을 쓰고 있으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과거 국내 신문을 보면 1957년 7월께 112가 범죄 신고전화로 정해진 것 같다. ‘서울시 경찰국은 범죄 신고의 신속을 기하기 위해 범죄가 발생했을 때 112번을 돌려 신고하면 되도록 체신당국과 합의를 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112로 정한 이유가 ‘일일이 알린다’는 뜻에서란 것이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번호를 돌리기 쉽다는 이유가 아니란 얘기다.
국민의 생명줄과 같은 긴급전화가 철없는 시민의 장난질로 수난을 겪은 지 오래다. 진짜 불이 났거나 범죄 피해를 당한 것처럼 신고하니 소방관이나 경찰은 출동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112 신고 중 의도적인 가짜·장난 전화는 0.11%인 1만여건이나 됐다. 허위전화는 정작 긴급 구조가 필요한 시민을 방치하게 한다는 점에서 범죄 행위와 같다.
119나 ‘바다의 119’로 불리는 122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형법(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으로 처벌토록 하고 있으나 실제 처벌 건수도 적고, 처벌 수위도 낮다. 장난전화를 엄하게 처벌하는 외국과 달리 관대하게 봐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27일 112에 허위 강도신고를 한 K씨가 ‘경찰력을 낭비하게 했다’며 경찰이 청구한 966만여원의 손해배상금을 물게 됐다. K씨는 수원의 2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을 보고 경찰 대응에 호기심이 생겨 거짓신고를 했다고 한다. 장난전화를 없애려면 처벌 수위를 높여 장난이 장난이 아님을 깨닫게 해야 한다.
마약범죄자 차에 매달려 범인을 체포한 경찰관이 ‘다이하드 경찰관’으로 불리며 시민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부산 연제경찰서 교통과 김현철 경장이다. 김 경장은 교통단속을 하다 달아나려던 범인의 차 보닛 위에 뛰어올라 광란의 질주를 버티고, 끝내 마약 투약 혐의 수배자를 체포했다. 이 사실은 한 택시의 블랙박스에 찍힌 동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김 경장의 행동은 대단히 위험했지만 동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격려 댓글을 달며 환호했다.
그동안 비리에 연루되거나 막을 수 있는 범죄를 놓치는 무능한 경찰관에게 실망한 시민들에게 김 경장은 일선에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경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안심과 믿음을 주었다. 실제로 일선에는 사명감 높은 경찰관이 많다. 서울역에서 많은 노숙인들이 큰 사고 없이 질서를 유지하는 것도 알고 보면 13년째 이들을 보살피는 장준기 남대문경찰서 경위의 힘이 크고, “자살하려면 수면제를 몇 알 먹어야 하느냐”는 중학생의 문의전화에 곧바로 학생을 찾아나서 상담하고 문제를 해결한 제주도 경찰관도 있다.
이런 경찰관 개개인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낮았다. 이에 경찰 측은 지난 5년간 5대 범죄는 18.5%, 112신고는 59.8% 늘어나는 등 업무량은 폭증했지만 경찰 인력은 0.79%밖에 늘지 않았고, 경찰 1인당 담당 인구가 주요국에 비해 너무 많고, 경위 이하가 93%에 달하는 등 심각한 인사적체로 사기가 떨어졌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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