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지자체에서 공금을 다루는 회계경리 담당 공무원의 비리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지만 지자체의 감시는 극히 허술하다. 충격적이다. 최근 여수시에서 터진 공무원의 횡령액이 76억 원대에 이르기 때문이다.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다.
검찰에 따르면 사상 최악의 공무원 횡령 사건으로 기록될 여수시 8급 공무원의 76억원 횡령은 결국 부인의 사채 빚을 갚기 위한 것으로 밝혀졌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10월 29일 자치단체 전산회계의 허점을 이용해 수기로 거짓 문서를 만드는 수법으로 국고 76억원을 횡령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국고손실, 공문서 위조)로 여수시 공무원 김모씨와 부인 김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여수시 이 공무원은 여수시가 발행한 상품권 대금을 빼돌리고 공무원 월급 등을 부풀려 급여 소득세 원천징수액 일부를 횡령하는 방식으로 총 76억원을 가로챘다. 이 공무원은 ‘사채놀이’를 하는 부인의 빚이 2007년 8억원에서 2년 만에 수십억원으로 불어나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이를 갚으려고 공금에 손을 댔다고 한다.
하지만 여수시는 공무원 김 모씨에게 수십억 원의 공금을 털린 후에 뒤늦게 전산시스템을 바꿨다. 여수시는 10월 30일 수기로 작성한 세입·세출외 현금 전산시스템을 전국 공통의 지방재정전산시스템인 ‘e-호조시스템’으로 11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여수시 관계자는 “e-호조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지방재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지난 3년간 수십억원을 빼돌린 김씨처럼 횡령행위는 더이상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 중간수사결과 김씨는 여수시 급여 관리 프로그램에 접속해 자신의 급여 및 공제액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방법으로 무려 40여억원을 빼냈다.
또 여수시의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는 이미 지난 2008년 도입된 e-호조시스템을 쓰고 있었지만, 김씨는 이 프로그램까지 무력화 한 정황이 조사결과 드러나 e-호조시스템도 관리 감독이 철저하지 않으면 범죄에 이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거의 모든 시 업무가 전산화돼 있는데 유독 김씨가 전담한 업무만 수기에 의존해 온 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전국의 지자체의 정부가 수년 전 개발해 보급한 지방재정전산시스템인 ‘e-호조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수시는 “수기로 하는 게 전산시스템보다 빠르고 정확하다”고 한 김씨의 말만 믿고 그가 전담한 업무만 예외로 해 줬다. 예산과 지출, 계약, 부채 등 지방재정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시스템만 사용했더라도 횡령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수박 겉핥기 식의 감사도 문제다. 김씨가 돈을 빼돌린 3년여 동안 여수시의회와 전남도 등에서 문제의 회계과에 대해 10여 차례 감사를 실시했지만 단 한 차례도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여수시는 사건 보름 전에 비리 제보를 받고 회계과 특별감사를 벌였으나 역시 비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번 사건은 자체 감사가 아니라, 감사원의 공직감찰 과정에서 들통이 났다. 역대 정부는 하나같이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달라졌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행정안전부는 하루 속히 여수시 공무원 76억원 횡령 사건과 관련, 기초 지방자치단체인 전국 227개 시·군·구를 전수 감사해야 한다. 여수시 횡령사건과 비슷한 비리가 다른 기초 지방자치단체에도 있는지 알아봐야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하루 속히 여수시 공무원의 거액 횡령이 사채놀이를 하는 부인의 빚을 갚기 위한 것임을 십문 인식하고 대부업의 법정 이자율을 낮추고 약탈적 대출행위에 대해서는 피해자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 서민들이 고리의 대부업체로 몰리는 까닭이다.
당국은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려 할 게 아니라 기존에 있는 부패방지시스템만이라도 제대로 굴러가게 끔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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