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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칼럼>창조하는 식물의 지혜 |
2012년12월06일(Thu) |
| 안용호 논설위원(전 광주시교육청 장학담당장학관) |
노오란 은행잎이 무리지어 이리저리 뒹굴더니 우리 집 텃밭의 감나무에 마지막 남은 잎도 지고, 남겨 논 까치밥까지 파먹어 을씨년스럽다. 조락의 계절인 것이다.
문득 고등학교 때 생물 수업 시간이 내 눈 앞을 지나간다. 정호태 생물 선생님 시간은 포복절도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 날의 주제는 ‘어찌하여 나뭇잎은 녹색을 띠는 걸까?’ 였다. 토의 과정을 통하여 얻은 결론은 엽록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엽록체 안에 든 엽록소라는 색소가 있어서 다른 색은 흡수하면서 유독 녹색만을 반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엽록체는 무엇을 하는가. 이 세상에서 태양에너지를 끌어 모아 화학에너지로 전환하는, 유일하게 기상천외한 존재이다.
태양빛이 뿌리에서 올라온 물을 분해하고 분해된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결합시켜 포도당을 만들면서 산소가 형성된다. 즉 이산화탄소는 포도당에 들어갔고, 우리가 마시는 산소는 애당초 물에 있던 산소인 셈이다. 그 포도당은 동식물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산화하여 열과 에너지를 내고, 생기는 이산화탄소는 대기로 날아간다. 태양빛이 있을 때는 포도당을 만들면서 산소를 내뿜고 그 산소는 우리 인간이 숨 쉬는데 사용되니 참 오묘하고 신통하지 않는가. 사람이 제 아무리 날고 기어도 식물의 광합성은 흉내조차 내지 못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식물은 이렇게 만든 포도당을 원료로 하여 녹말, 지방, 단백질 등을 만들어낸단다.
공부가 진지해져 갈 무렵 어떤 친구가 불쑥 ‘꽃은 무엇입니까?’한다. “꽃?” 하시더니 “꽃은 잎이 변한 것이야. 꽃은 식물들의 생식기이지. 사람과는 다르게 꽃들은 생식기를 공중에다 덩그러니 매달고 고개를 내빼고 색태를 뽐내고 있단다. 꽃가루와 암술이 만나는 꽃가루받이는 곧 식물의 ‘짝짓기’요, 수정은 임신인 셈이지.” 선생님은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내려 앉으면 암술은 길을 내어 씨방까지 내려가게 돕는다고 말씀하셨다. 내려가다가 세포 분열을 하여 하나가 내려가 씨방에서 수정이 된다니 놀라웠다. 그래서 분류학자 린네는 ‘꽃은 가운데 여자 하나가 누워있고 둘레에 여러 남자가 있는 꼴’이라고 정의했단다. 박수가 나오고 실컷 웃었던 기억이 난다.
다음 주제는 ‘단풍은 왜 드는가?’였다.
식물도 물질대사를 하기에 노폐물이 생긴다. 그런데 우리처럼 따로 콩팥같은 배설기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세포에 있는 ‘액포’라는 작은 주머니에다 배설물을 모조리 담아 뒀다 내다 버린다. 똥오줌을 제 이파리에다 담아 둔다고 생각하니 참 우스웠다. 그런데 그 액포 속에 단풍의 아름다운 색깔이 들어있단다. 터질듯 부푼 액포 안에는 카로틴이나 크산토필, 타닌 같은 색소는 물론이고 화청소라 불리는 안토시아닌에다 달콤한 당분도 녹아 들어 있어서 잎을 물들인단다.
가을이 되어 추상같은 냉기에 엽록소가 녹으면, 카로틴은 잎사귀를 당근같이 붉고 누르스름한 색을 내게 하고, 크산토필은 은행잎처럼 샛노랗게 물들이며, 타닌은 거무스름하게 잎을 염색한단다. 그리고 꽃물을 들이기도 하는 화청소는 액포가 산성이면 붉은색 쪽을, 알카리성이면 푸르스름한 색을 내게 한다. 그런데 액포에 당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화청소와 당이 결합하여 단풍의 발색이 훨씬 더 맑고 밝단다. 가을에 날씨가 청명한 날이 길면 당이 많이 만들어져서 단풍이 더 예쁘다니 자연의 조화는 깊고도 깊구나.
안토시아닌은 고등식물의 잎, 줄기, 뿌리, 꽃, 과일 등 어느 조직에나 생기는 수용성 물질인데 특히 과일과 꽃에 많으며, 플라보노이드계 물질로 냄새와 맛이 거의 없단다. 안토시아닌은 꽃에서는 곤충을 유인해 꽃가루를 옮기게 만들고, 잎에서는 강한 자외선을 막아주는 역할까지 한단다.
이 색소는 수소 이온 농도에 따라 빨간색, 보라색, 파란색 등을 띠게 되는데, 붉은 꽃은 식물이 산성이고, 보라색과 파란색 계통의 꽃은 알카리성이다. 안토시아닌은 황산화 효과로 주목받는 황산화 물질이라고 한다. 아시아베리, 체리, 포도, 적양배추 같은 것이 인간에 이로운 이유는 바로 이 황산화 물질 때문이란다.
또 태양에너지를 써서 강과 바다의 식물 플랑크톤이 자라고, 그것을 동물성 플랑크톤이 먹고, 새우, 작은 물고기, 큰 물고기, 사람 순으로 먹이 사슬이 이루어지는데 먹이 사슬은 에너지 사슬이라고 볼 수 있어 우리는 태양에너지를 먹고 있는 샘이다. 먹이사슬과 먹이그물로 만물이 얽혀 있는 것이다. 저 길거리의 하찮은 풀도 우리 생명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식물이야말로 위대한 창조자라는 생각이 드는 생물시간은 늘 이렇게 재미있게 웃다가 끝났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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