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고장 장성에서 청소년들에게 ‘선비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캠프를 마련했다고 한다. 고무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윤리강상이 무너지고 도덕이 땅에 떨어진 현실에서 역사의식을 직관해 전통과 미래를 연속시키는 맥을 잘 짚었기 때문이다.
장성군(군수 김양수)에 따르면 겨울방학을 맞아 내년 1월 5일부터 총 4차례에 걸쳐 장성군 지역 학생은 물론 인근 지역의 초등학생(4∼6학년)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문불여 무불여 장성 문화캠프’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주요 프로그램은 ‘왕실교육 체험’이다. 하서 김인후(1510∼1560) 선생께서 인종의 세자시절 때 스승으로 재임하던 상황을 재연함으로써 학생들이 왕세자복을 직접 입은 채로 예절교육과 투호, 활쏘기 등의 체험기회를 제공받게 된다.
이야말로 김양수 장성군수의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선비의 고장 장성군이 필암서원을 호남정신 문화의 메카로 만들어 놓고 정의와 진리와 도덕을 재건하려고 전통교육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만강의 사의를 표한다.
그럼 하서 김인후 선생은 어떤 분인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뤘던 문묘에 모셔진 정몽주 등 ‘동국 18현’ 가운데 유일한 호남 인물이다.
하서 선생의 삶은 호남 절의의 근간을 이뤘다. 선생은 제자로 가르쳤던 인종이 갑자기 승하하자 관직에서 물러난 후 15년 동안 다른 임금을 섬기지 않고 초야에서 학문을 닦았다.하서 선생은 호남의 유학생들에게 학문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선생은 면앙정 송순의 문인이고, 송강 정철의 스승이기도 하다. 또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나 미암 유희춘 등 당대의 문장가들과는 사돈지간으로 학문과 교분을 나눴다.
특히 하서 선생은 퇴계 이황과 8년 동안 ‘사칠논변’을 펼침으로써 조선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고봉 기대승의 학문에 대해 깊은 성찰을 했다. 아울러 계산 풍류를 노래한 1천500여수의 한시를 남겼다.
선생이 5세 때 지은 한시 한수를 다음에 들어보자. 그것은 한편의 시만 보아도 인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보름달’이란 시다.
땅 형세 따라 높고 낮으며
천시로 말미암아 이르고 늦네
인간의 말을 어찌 탓할 게 있나
달은 본래 사정없는 거라네.
이 시는 새해를 맞아 둥근 보름달을 보고 쓴 것이다. 아주 유명하다. 과연 다섯살 나이에 이렇게 깊은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를 꿰뚫어 본 이 시를 보고 당시 사람들은 천재의 작품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깨끗한 마음을 가짐으로써 자연과 세상을 한점 사심없이 보았을 것이다. 따라서 하서 선생은 훗날 대학자로 대성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 뿐만 아니라, 한글로 된 우리 민족시 시조도 남아 있다. 한수를 다음에 들어보자. 이 시조는 ‘자연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현재 장성군 장성읍 기산리에 있는 장성 아카데미 하우스 앞에 시비로 세워져 있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물도 절로하니
산수간 나도 절로
아마도 절로 삼긴 몸이라
절로절로 늙사오리.
이 자연가는 지금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겨 암송하고 있다. 이는 시경 ‘위풍’에서 비롯됐다. 자연 도락의 경지를 읊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서 선생의 시세계는 시어를 통해 ‘도학사상’을 구현했다.
따라서 우리는 하서 선생의 도학적 자아와 예술적 자아가 하나의 합일된 그의 인격주체의 고양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시언지(詩言志)’그것이다.
그러면 하서 선생의 사상은 무엇인가? 인간수행론을 담고 있는 도학적 경세사상이다. 도학적 경세사상은 인류애와 생명애를 강조한 것이다. 우주만물을 향해 열려 있는 그 마음은 심지어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 대해서까지 물아일체적 사랑의 눈빛과 손길을 보냈다. 한마디로 하서 선생의 도학적 경세사상은 하나의 인간학이요, 그것도 실천적 인간학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차제에 장성군수에게 다음 몇가지만 주문하고자 한다. 노파심에서 군민의 여망에 부합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첫째, 장성군수는 반드시 장성선비대학에 새로운 커리귤럼을 만들어 ‘하서도학반’을 두어야 한다. 작금에 도덕이 땅에 떨어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장성군수는 하루 속히 필암서원에 초·중생의 한문교실을 개설해야 한다. 요즘, 학교폭력이 심해지고 있어 물리치료만으로는 안 되는 까닭이다. 한문 공부를 통해 인성교육을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장성군 당국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공직자의 기본적인 의무임을 인식하고 ‘하서 선생 도학’연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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