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덕수 현 국무총리다. 당시 한 본부장은 한-칠레 FTA와 한미 투자협정(BIT)을 추진해 통상정책의 패러다임을 다자간 협상에서 양자 협상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이후 경제부총리를 거쳐 한미 FTA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 최근 총리로 기용된 것이다. 통상교섭본부가 총리를 배출한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국무총리 임명을 환영한다. 왜냐하면 그가 농민을 위한 농민에 의한 행정에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과 관련해 “농업 분야 보상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 2014년까지 농촌 발전에 투자하기로 한 119조원을 더 늘릴 수도 있다”고 했다. 이는 한·미 FTA 바람을 가장 많이 타게 될 농민들을 먼저 다독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 타결로 당장 벼랑 끝에 서게 된 사람들은 농민이다. 우리는 제조업 분야에서 이득을 얻으려 농산물 분야에서 너무 많은 것을 내줬다. 장기적으로 관세가 계속 유지되는 품목은 쌀·콩·감자·분유·천연꿀 다섯 가지밖에 안 된다.
이는 시간만 벌었을 뿐 한국 농업에 대한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세계화 추세 속에서 우리 농업·농촌·농민의 장래가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까닭이다. 갈수록 고령화(高齡化) 되는 농촌 현실에서 앞으로 10년 후에도 농사를 지을 사람은 얼마나 될지, 농민들이 왜 빚을 지고 있고 그걸 갚지 못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기본 발상은 이렇다. 어차피 농업은 경쟁력이 없다. 따라서 농업을 포기하고 다른 산업을 키워야 한다. 국가 정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한심한 수준이다. 경쟁력이 없다고 농업을 포기한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일본, 프랑스 등 많은 선진국들은 오히려 농업을 주요 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미 FTA가 국가적 도약을 이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이해한다. 지역적 양자적 무역협정인 FTA는 세계 교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대세가 되고 있다. 대외 무역의 비중이 경제 70% 이상인 우리나라가 맺은 FTA는 칠레, 싱가포르 등 6개국 뿐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FTA로 세계 흐름에 뒤처진 통상 외교에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정부 전략이었다. 지난 10년간 3%에서 2.6%로 매년 추락하고 있는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국내적으로도 미국의 자본과 앞선 기술, 노하우를 받아들여 제도와 관행을 선진화하는 촉매제 역할이 기대된다. 실제로 일본은 막대한 무역흑자를 안겨주고 있는 한국이 핵심 기술의 수입선을 미국으로 바꿀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노파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다음 몇 가지를 주문하고자 한다. 값싼 미국산 농산물이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하면 식탁 위에서의 경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첫째, 국무총리는 농가에 장기적으로 국제경쟁력을 갖춘 농산물을 권장하고 이를 북돋우기 위한 체계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막대한 농업 지원 예산을 재래식 농업 부문의 단순 존속을 위해 투입하는 일은 금물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그동안 농업 부문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는데도 농촌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농업·농촌·농민의 현실을 모른 채 눈먼 사람 문고리 잡듯 돈만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는 42조원의 농·어촌 구조 개선대책, 김대중 정부는 45조원의 농업·농촌 발전 계획, 지금 정부는 119조원의 농업·농촌 종합 대책을 내놓았다.
농업 강국(强國) 뉴질랜드는 1984년부터 농업보조금을 대부분 없앴다. 그전까지 농가 소득의 35%를 차지하던 정부 보조금이 지금은 2%밖에 안 된다. 연구와 검역 서비스에 대한 보조금만 늘리고 나머지 농가 소득을 보태주는 지원금은 다 없앴다.
둘째, 국무총리는 하루 속히 일자리 창출에 전심 전력해야 한다. 농촌이 경쟁력을 잃었을 때 실업자(失業者)를 구제해야 하는 까닭이다.
2005년 현재 전국 농가(農家) 인구는 343만명으로 전체 인구 4829만명의 7.1%다. 농림업 생산액 22조3060억원은 국내총생산(GDP)의 3.1%다. 가구당 3050만원의 소득을 올렸고, 평균 2721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농가소득은 도시 근로자 가구의 78% 수준인 것이다.
정부 당국은 반드시 우리 농업과 농촌의 현실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해야 한다. 영세한 소농 위주의 농업으로는 돈을 아무리 퍼부어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앞으로 농촌 지원대책은 가능성 있는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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