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밤 서울 도심에서 일어난 주한미군의 난동과 도주극은 우리나라에 미군 범죄가 도를 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심각한 사건이다.
미군 병사들은 2일 밤 12시쯤 경찰 검문을 거부한 후 용산구 이태원동 중심가에서 광진구 자양동까지 10여km 도로를 시속 150km로 과속 질주해 도망쳤고, 그 과정에서 다른 자동차 4대와 충돌 사고를 일으켰다.
이들은 도심을 무법천지로 만든 뒤 새벽 1시쯤 자동차를 용산 미군 부대 근처에 버리고 영내로 숨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1명과 시민 2명이 다치고 미군 병사 1명이 경찰이 발사한 실탄에 어깨를 맞아 부상했다.
경찰이 차량을 발견하는 데는 33시간이 걸렸다. 차량 안에는 경찰이 쏜 총알에 맞은 미군이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혈흔과 함께 모형 총기에 사용되는 BB 탄알이 다수 발견됐다. 경찰은 이들이 시민에게 모형 총을 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용산경찰서는 4일 오후 사건 피의자인 C(26)하사와 여군인 F(22) 상병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 뒤 “#이들로부터 ‘이태원 해밀턴 호텔 인접도로에서 행인들을 향해 BB탄을 쏜 뒤 경찰 검문에 불응해 차를 탁 도주했다’는 시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주한미군들의 이런 대담한 범죄를 가능케 한 일차적인 원인은 미군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때문이다. 작년 5월 한미 양국이 개정한 SOFA 규정에 따르면 미군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한국 경찰이 현장에서 체포해야 1차 초동조사를 할 수 있고, 검거에 실패한 경우 미군이 출석 요구에 응해야만 경찰 조사가 가능하다.
이렇다 보니 국내 수사기관이 범죄를 저지른 미군을 소환 조사하기가 실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전에는 현행범을 붙잡아도 살인이나 강간 범죄가 아니면 미군의 요구에 따라 신병을 즉각 넘겨줘야 했다. SO-FA 개정 전이든 후든 현행범으로 잡히지만 않으면 미군에 유리하도록 돼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미군들이 서울 도심을 무법천지로 만들고도 기를 쓰고 자신들의 영내로 들어간 것도 이러한 협정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군부대는 우리 검경은 물론, 법원의 권위까지도 무시되는 치외법권지역이다. 전국의 미군부대들은 주소조차도 국내 주소가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주다.
여기에 ‘공무 집행중 발생한 사항은 대한민국에서 행해진 판결의 집행절차를 따르지 않는다’는 내용도 한미 SOFA의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공무집행 여부는 전적으로 미군이 판단한다.
한미 양국은 최근 ‘주한미군 이태원 난동사건’을 계기로 이르면 3월 안에 주둔군지위협정(SOFA) 형사분과위원회를 열고 SOFA개선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5일 알려왔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경찰관이 차에 치인 이번 사건은 국민정서와 법 감정차원에서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며 3월 말이 될지, 4월 초가 될지 아직 확정할 수 없지만 미군 범죄를 다루는 위원회를 조만간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사건 직후 경찰의 수사가 신속하고 충분하게 이뤄졌는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한미는 지난해 5월 SOFA 합동위원회 합의 사항을 통해 우리 경찰이 기소 전이라도 협의를 거쳐 미군 피의자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도록 했다.
2002년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미선양 사고’이후 미군은 주한 미군들의 범법 행위가 발생할 때마다 발 빠르게 사과하며 사건이 불필요하게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데도 미군 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한 해 300건 이상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에도 경기도 의정부 전동차에서 주한 미군 6명이 20대 여성을 성추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때도 해당 부대 지휘관이 의정부시를 방문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적발된 미군 범죄 2천200여 건 가운데 구속 수사를 받은 경우는 4명뿐이다. SOFA에 따라 한국 경찰이 미군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못할 경우 해당 미군의 신병을 확보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군은 먼저 한국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주한 미군 일부 장병의 일탈 행위를 근본적으로 줄일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한미 양국은 하루 속히 주한미군 범죄의 수사 및 처벌 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SOFA 개정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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