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국세청 의 한 팀이 세무조사 때 기업들의 편의를 봐주고 3억여원을 받아 팀원이 모두 나눠 가진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팀원 전원이 이 같은 금품수수 부조리를 저지른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 아닌가 싶다. 경찰은 팀원 중 한 명이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으면 혼자 챙기지 않고 팀장-반장-차석-팀원 순으로 직급별로 약간의 차등을 둬 배분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업체로부터 직접 뇌물을 받은 팀원 자신이 가장 많이 챙겼다.
이번 사건을 보니 20여년 전 당시 국세청 간부에게서 들은 ‘전목일구론’이 생각난다. 세무공무원의 뇌물 분배 방식이 시대 흐름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면서 한 얘기였다. “금품이 생기면 상납하거나 나눠먹는 입이 과거 네 개에서 세 개, 두 개로 점차 줄어들다 지금은 한 개가 됐다”는 것이었다. 입이 한 개가 됐다는 말은 뇌물을 받은 사람이 독식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그 간부의 말은 틀린 것 같다. 아직도 부정한 금품을 나눠 갖는 ‘미풍양속’이 엄연히 살아 있으니 말이다.
이쯤에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악명 높은 도둑이던 도척이 말한 ‘대도의 5대 도’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장자’에 나오는 얘기다. 도척이 바른 길로 가도록 설득하기 위해 찾아온 공자를 크게 꾸짖고 돌려보내자, 부하가 “도적에게도 도가 있느냐”고 물었다. 도척은 “성용의지인이 필요하다”며 “이를 갖추지 못하면 큰 도둑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훔칠 물건이 있는 집을 알아보는 것이 성, 도둑질하기 위해 남보다 먼저 담장을 넘는 것이 용, 도둑질을 끝내고 빠져나올 때 맨 뒤에 나오는 것이 의, 훔친 물건의 좋고 나쁨을 아는 것이 지, 훔친 물건을 공평하거나 하후상박으로 나누는 것이 인이다.
국세청은 2003년부터 법적 구속력을 갖춘 구체적인 윤리 규범 ‘국세청 공무원 행동강령’을 따로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과거 관행화된 부패 구조를 근절하고 국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행동강령은 아직도 뿌리내리지 못한 것 같다.
경찰청은 세무조사 때 편의를 봐주고 기업들로부터 3억원의 뇌물을 받아 나눠 가진 혐의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 1개 팀 9명 전원을 입건했다. 경찰은 9명 가운데 6천700만원을 받은 최고참 팀원을 구속하고 2천700만원씩 받은 팀장·반장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나머지 6명은 불구속하거나 비리 내용을 국세청에 통보했다. 조사국은 엘리트 세무 공무원들이 배치돼 기업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조직이다.
이번에 적발된 세무 공무원들은 2009~11년 7개 업체를 세무조사하면서 세금 추징액을 기업들 요청대로 인정해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 팀장과 반장, 팀원 중 상급자가 뇌물을 받아오면 각자 자기 몫을 챙기고 나머지를 다른 팀원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조사국 공무원들은 세무조사 때마다 소수 인원이 한 팀으로 일하며 탈세 등 적발 내용을 전원이 매일 확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 때문에 팀원 전원이 뇌물을 받기로 담합이 이뤄져야만 뇌물을 받을 수 있고, 뇌물 받는 걸 막으려면 팀원들 사이에 서로 감시하는 분위기가 생겨나야 한다. 그러나 세무조사팀 전체가 뇌물을 챙기는 ‘공범 조직’이 돼버리는데 누가 누구를 감시할 수 있겠는가.
국세청장은 정부기관장 가운데 가장 감옥에 많이 갔다. 역대 청장 18명 중에서 8명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사법처리 되거나 불명예 퇴진했다. 한상률 전 청장이 뇌물 공여 등의 혐의를 받고 미국에서 23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할 때 국세청 간부들이 10개 기업을 압박해 ‘자문료’ 명목으로 5억여 원을 받아내 전달한 일이 있다. 국세청의 윤리불감증은 위아래 없이 조직 전체에 만연한 듯하다.
역대 정권들은 예외 없이 세무 비리를 끊겠다고 공언했지만 성과는 크지 않았다. 거꾸로 권부는 미묘한 정치 사안이 있을 때마다 국세청을 동원했다. 김대중 정부의 신문사 세무조사, 이명박 정부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세무조사를 통한 노무현 때리기 등이 생생한 사례다. 세금은 국민이 재산권을 놓고 국가와 직접 맞서는 현장이다. 납세자로부터 ‘매부 좋고 누이 좋고’ 식의 검은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내건 기대치로 ‘법과 원칙이 바로 선 선진 일류 국세 행정’을 통해 국민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조직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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