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4월 재·보선이 실시되는 기초단체장·기초의원 선거구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당 공심위의 기초선거 무공천 결정을 최고위가 추인한 것이다.
최고위는 “해당 지역이 사정에 따라 특별한 이견이 없는 한 공심위 건의를 받아들여 무공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모았고 공심위도 곧이어 소집돼 무공천 원칙을 재차 확인했다.
기초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배제하겠다는 건 여야 모두의 대선 공약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차례 “지방이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폐해를 줄이겠다”고 다짐했었다. 대선으로부터 넉 달 만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성의’를 보인 셈이다. “관련 법제화가 되지 않았다”며 공천한 민주통합당과 비교해 돋보이는 선택을 했다.
사실 기초선거에서 정당의 입김을 배제해야 한다는 데 대해선 오랜 공감대가 있어왔다. 단골 정치개혁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버텼다. 의원들은 사실상 공천권을 쥐고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기초단체장으로, 또는 기초의원으로 천거했고 그렇게 당선된 사람들은 곧잘 의원들의 ‘수족’이 되곤 했다.
풀뿌리 자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정작 유권자는 안중에 없고 의원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애면글면해야 했다. 의원들로선 내려놓기 어려운 ‘기득권’이었다.
새누리당도 이번 결정을 하는 데 13일이나 소요됐다. 최고위원 사이에 험한 말이 오갔다. 불과 5곳에 대한 공천 문제였는데도 그랬다. 내년 지방선거엔 기초단체장 280여 곳과 기초의회 2천800여 곳이 걸렸다.
새누리당뿐 아니라 민주당도, 당 지도부뿐 아니라 의원 한 명 한 명도 동의해야 가능한, 지난한 개혁이란 의미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여야가 ‘기초선거 정당 배제’란 약속을 지켜낸다면 그만큼 국민적 환호가 우렁찰 거란 예상도 가능하다.
그게 여야가 다짐해 온 ‘새 정치’다. 민주통합당이 4·24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원내 127석을 가진 제1 야당이 국회의원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은 공당의 역할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정치공학적 고려는 하지 않겠다던 안철수 전 교수 측도 민주당의 무공천을 부추겼다. 공천 문제로 민주당 내부가 갈라지자 “우리도 크게 보면 범야권”이라며 민주당에 ‘야권연대’를 재촉했고, 무공천 발표 후에는 “바람직하다”고 환영했다. 만만치 않은 현실에 ‘구태 정치’의 지원이 간절하다고 고백한 것과 같다.
국민은 이번 일에서 10년 전 데자뷔(기시감)를 느낀다. 2003년 4·24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당시 유시민 개혁당 후보를 위해 경기 고양 덕양갑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지금의 안 전 교수처럼 ‘정당개혁과 정치혁명’을 주장했던 유 후보는 당선되자마자 ‘개혁신당’을 외쳤다. 이것이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되어 그해 11월 열린우리당 창당과 민주당 분당으로 이어졌다.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유 후보로 단일화하지 않고 자당의 김진표 후보를 공천했더라면 당선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안 전 교수만 한 후보가 없다면 당당하게 안 전 교수에게 민주당에 입당하라고 요구하는 게 옳다.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무소속으로 이긴 뒤 입당하는 일이 반복되니까 민주당의 체급이 떨어지는 것이다. 18대 대선에서 독자적인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안 전 교수에게 끌려다니던 민주당이 이번에도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구청장, 군수 등에 대한 정당 공천을 없애면 참신한 지역 정치인 대신에 지방 토호들이 주로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 또 출마자들이 난립해 유권자들이 누가 누군지 판단하기 힘들 수 있고, 작은 곳일 경우 지지 후보를 놓고 ‘지역 편 가르기’가 심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 중에는 자신이 속한 지역의 공천권을 포기하게 되면 출마 희망자들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는 것이 두려워 반대하는 경우도 많다. 현 체제에선 자치단체장은 지역 주민보다 중앙당과 지역 국회의원의 눈치를 더 본다. 대표적인 폐해다.
코믹스-200727.jpg)
.gif)
돌아가기.JPG)
1.jpg)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