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할머니께서는 공부하라는 말을 달고 사셨다. ‘너희들만은 가난하게 살지 말고 부자로 행복하게 살라’는 사랑어린 깊은 마음이 배어 있었다는 것을 먼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옛날에는 공부를 주로 서당이나 향교 서원 등에서 하였다. 오늘 우리는 학교라는 곳에서 공부를 한다. 그런데 공부가 만인의 관심사가 되다보니까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그리고 점점 풀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네 탓, 내 탓만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살짝 비켜 보면 우리 교육이 남에게 보이고 출세를 하기 위한 ‘위인지학’을 지향하고 타인과의 과도한 경쟁에 노출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과거 등으로 피나는 공부를 했지만 자신과의 싸움이었으며 자신을 위한 ‘위기지학’이었다. 평상시의 공부도 자신의 수양에 더 힘을 쏟았다.
어쨌든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무리 체제가 바뀌어도 만고불변의 진리는 공부는 자신이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부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매우 어려운 것이다. 오늘날 모든 교육이론을 무색하게 하고 오직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버린 평생 공부벌레 조선 선비 김득신의 평생 공부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김득신은 타고난 둔재였지만 책 읽기를 통해 그것도 평범한 독서가 아니라 지독하고 꾸준한 책 읽기를 통해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도약한 인간 승리의 롤 모델이다.
그는 사대부가에서 태어났지만 지나치게 둔하고 어리석은데다 멍청하기까지 해서 글을 배우기 시작한 나이도 다른 아이들보다 늦었다. 또한 한 가지를 배우고 돌아서면 그 즉시 잊어버렸다. 오죽했으면 주위 사람들이 글공부를 그만두라고 하였을 정도로 그는 주위에서 소문난 둔재였다.
득신은 스무 살이 되어서야 겨우 글이나마 지을 수 있게 되었을 정도로 공부 속도가 매우 늦었다. 오늘날 2, 3세 어린이에게 영어, 중국어를 가르치면서 발레, 영재교육까지 시키는 엄마들은 참고할 일이다.
이렇게 공부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김득신에게도 한 가지 장점은 있었다. 그것은 책을 읽고 또 읽는 끈기였다. 끈기있게 읽고 또 읽은 덕분에 그는 남들이 알아주는 둔재로 태어났지만 59세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고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김득신의 공부는 중용의 ‘백천지공’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남이 한 번에 능히 하면 나는 열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능히 하면 나는 천 번을 한다.’ 배우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만일 능하게 해내지 못한다면 절대 배움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공부에 빠른 길은 없다. 쉬운 방법도 없다.
그러면 김득신은 얼마나 책을 읽었는가? 그의 옛집에 걸린 독수기에는 자신이 평생 1만 번 이상 읽은 책 36편의 목록이 적혀있다. 거기에 보면 사기, 백이전을 무려 1억 1만 3천번이나 읽었다고 적혀 있다.
한 번은 말을 타고 가다가 백이전을 외우는데 틀려 버렸다. 마침 하도 들어서 외워버린 종이 깨우쳐주자 종을 말에 태우고 갔다는 일화는 웃음을 짓게 한다.
만 번 이상 읽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로 읽고 또 읽어 시를 쓰는데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보여진다. 두보는 ‘만권의 책을 읽으면 글을 쓰는 것이 신의 경지에 이른다’고 말한 바 있다. 추사 김정희도 ‘가슴 속에 만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글과 그림이 저절로 흘러 넘치게 된다’는 말을 남겼다.
교육 이론은 모두 저리 가라. 다 헛 것이다. 김득신의 ‘읽고 또 읽는 공부법’은 우리 어린이들이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절대로 안 되는 공부는 없다. 조선의 둔재로 알려졌지만 책 읽기에서는 새 지평을 연 사람, 백곡 김득신의 공부법은 현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공부법인 것 같다.
공부를 출세의 수단으로 여기지 말라는 정약용은 강진 유배지에서 18년간 쓰고 읽고 베끼고를 거듭하여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하면서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 날 정도로 공부를 했다. 유독 중요한 부분을 옮겨 쓰기를 강조한다. 박지원은 ‘공부는 왕도가 따로 없다’고 말한다. 퇴계 이황은 ‘거울을 닦듯 꾸준히 공부하라’고 한다. 남명 조식은 ‘잠을 줄이고 항상 깨어 있으라’고 한다. 명재 윤증도 ‘쉬지 않고 공부해야 성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부를 통해 자신을 깨우치고 만족하며 남을 두루 사랑하는 훌륭한 선비 같은 사람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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