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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칼럼>잡초 |
2013년06월12일(Wed) |
| 안용호 논설위원(전 광주시교육청 장학담당장학관) |
어렸을 때 할머니를 따라 밭에 가면, 뜨거운 햇볕 아래서 땀을 흘리시면서 밭의 김을 매셨다. 김만 매시는 것이 아니라 유충렬전 등 고전 소설을 구전으로 읊으시면서 하루를 보내셨다.
참거리라야 감자나 고구마 개떡 등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은 지지리 매두었던 쇠비름이 다시 살아나 짜증을 내시던 기억이 난다. 농사는 잡초와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잡초를 제거하기 위하여 무서운 농약을 만들어 논과 밭에 그 많던 곤충들이 사라진 지 오래이다. 여름에 비만 오면 그 많던 개구리들, 가을이면 벼이삭 위에 떼로 앉아 있던 메뚜기떼들, 이제는 이야기 속에나 나올 풍경이 되어버렸다. 잡초를 제거하기 위하여 우리가 치루어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큰 것이다.
그러면 ‘잡초‘는 다 나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잡초는 인간이 키우는 작물한테 가야 할 흙 속 무기질 영양분을 빼앗는 훼방꾼이기는커녕 작물이 영양분을 빨아들일 수 있도록 길을 내주는 ‘마법사’요, 작물의 생존 터전인 흙을 여러 무기질이 풍부한 상태로 비옥하게 해 주는 ‘토양의 파수꾼’이다.
잡초연구가 코캐너는 대학 시절 한 들판에서 우물파기 작업을 하다가 잡초의 능력을 확인한다. 토양의 겉 부분, 곧 두께가 60cm 가량 되는 표층토 곳곳에서 살이 오른 지렁이와 곤충들까지 토양생물이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었는데, 그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바로 하부 토양층, 겉 하층토 깊은 곳까지 내리뻗은 잡초의 뿌리였다. 깊이 90cm쯤 되는 하층토는 조직이 치밀하고 딱딱했는데, 그 조직을 강인한 뿌리의 힘으로 뚫고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수수 작물이 무성한 비옥한 목초지였던 그 들판은 제초작업 탓에 잡초라고는 비름과 까마중, 도꼬마리 세 종류만이 드문드문 나 있었다. 이 세 잡초의 곁뿌리가 그 들판 밑 하층토에 뻗어 있고 그 뿌리를 따라 수수 작물도 함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잡초 뿌리가 없는 곳에는 수수의 뿌리도 없다는 점이다.
이 잡초들은 표층토에 많은 영양분이 있었는데도 하층토까지 뿌리를 뻗어 결과적으로 작물이 표층토에서 영양분을 충분히 빨아들이도록 돕고 있었다. 결국 작물의 영양분 흡수지역을 넓혀주고 있었던 것이다.
잡초에 따라 다르겠지만 ‘비름’은 감자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시켜서 감자 뿌리가 튼튼하게 자라게 한다. ‘털비름’과 ‘흰명아주’, ‘방가지똥’도 토마토밭이나 옥수수밭에서 자라면서 그 직물의 보호 식물 구실을 한다. 잡초의 또 다른 구실은 토양을 살린다. 잡초는 땅 속 깊이 뻗은 뿌리를 통해 하층토에 있는 영양분을 끌어 올린다.
뿐만 아니라 잡초의 뿌리들은 딱딱한 토양을 뚫고 그곳에 섬유소를 채워 토양 입자를 덩어리지게 한다.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이다.
코캐너는 죽어가다 잡초 때문에 살아난 과수원을 예로 들면서 잡초가 없었더라면 미국 평원 대부분 목초지역은 불모지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박주가리, 엉겅퀴, 덤불, 돼지풀 같은 잡초들은 자연이 내린 토양 개량 식물이라는 것이다. 잡초는 1만 년 세월을 홀대와 차별 속에서도 버텨온 식물이다.
잡초를 읽다보니 모교에서 6학년을 담임했을 때 기억이 떠오른다. 유복이는 시험만 보면 0점을 맞곤 했다. 해서 잡초라는 별명을 한 달간 얻었다. 하루는 시험지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살펴 보니 묘하게도 맞는 답을 피하여 틀린 답만을 썼다. 아주 신기했다. 해서 안 해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유복아 신기하구나. 어떻게 이렇게 틀린 답만을 찾아 썼니? 아예 3자로만 다 썼어도….”
그런 유복이가 25년 뒤에는 사장이 되어 회비도 안 받고 동창회를 이끌고 있다. 그는 광주 근교에 부동산을 투지할 줄 아는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훌륭한 인재였던 것이다. 유복이에 버금가는 대복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도 항상 0점이었다. 그 후 대복이는 성남에서 부동산 투기를 하여 회사를 세우고 지금은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평안한 여생을 즐기고 있다.
잡초가 다른 식물을 잘 자라게 하고 토양까지도 개량하는 이로운 식물이듯이 교실에 앉아 있는 공부 못하는 아이도 마음 속에는 원대한 꿈을 가진 미래의 꿈나무라는 것을 알고 한 번 더 웃어주고 한 번 더 머리를 쓰다듬어 줄 일이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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