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장관급 회담 참석차 서울에 온 북측 대표단장 권호웅(48) 내각책임참사가 경위에 맞지 않는 언행으로 구설에 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70, 80대 혁명원로들이 우대받는 북한에서 젊은 나이에 최고위급 남북대화의 수장(首長)이 된 때문인지 철두철미한 사회주의 혁명관을 보여 주고 있다. 대화 상대지만 나이로는 훨씬 연장자인 이재정(63) 통일부 장관을 가르치려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이 장관이 고사를 인용하거나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써서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는 말을 하면 냉소를 띠었다. 예의상 이래서야 쓰겠는가.
자고(自古)로 우리나라는 ‘장유유서(長幼有序)’가 분명한 동방 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다. 아무리 사회주의혁명관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예의는 지켜야 한다. 예의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과 증오 없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孔子)는 예의가 가정, 사회, 나라를 망치는 주범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을 구원할 힘이라 여겼다. 그래서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라(克己復禮)”고 강조했다. 따라서 남북 장관급회담은 이제부터라도 예의로 돌아가 ‘안하무인(眼下無人)’격의 태도를 버리고 인도적 차원에서 해야 한다.
한 정부 당국자는 “권 단장이 ‘냉전시대의 낡은 틀을 버리자’는 상투적인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과는 달리 정작 자신은 구태의연한 대결의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언행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지당한 논평인 것이다.
권 단장은 지난달 30일 행주산성 참관 도중 이 장관이 “권 단장은 권율장군과 같은 문중이니 감회가 더 깊겠다”고 덕담을 건네자 “우리는 씨족 문벌주의에 반대한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성씨의 차별은 없다”고 되받았다고 한다. 그는 뼈속까지 공산주의자가 아닌가 싶다.
북한은 지난달 31일 남한의 쌀 40만톤 차관 제공 지연에 강력히 항의했다. 이날이 당초 남북이 합의한 차관 제공시한(5월 하순)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남측은 북한의 6자회담 2·13합의 불이행을 이유로 쌀 북송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쌀 차관 제공 문제가 진전을 이루지 못할 경우 다른 회담 의제에 대한 일체의 논의를 거부할 태세였다. 그러나 6월 1일 오후 종결회의에서 공동보도문을 채택함으로써 잘 마감됐다. 북에 저자세를 취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북한은 쌀을 투정의 빌미로 삼았다. 남한에 쌀을 맡겨 둔 양 빨리 내놓으라고 재촉했다. 무례(無禮)하기 짝이 없다. 양심도 염치도 없는 사람들이다.
한국인에게 쌀은 특정한 존재다 우리가 기억을 조금만 뒤로 돌리면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쌀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흘린 땀의 결정체로 떠오른다. 부잣집에서도 설거지하면서 모은 밥알을 깨끗이 씻어 끓여 먹을 정도로 쌀을 귀하게 여겼다.
한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쌀을 건드리면 협상을 깰 수도 있다”며 강경하게 버텨 쌀을 개방 대상에서 제외하는 데 성공했다. 평범한 국민의 농심(農心) 또한 여전하다.
그토록 귀한 쌀이 북한과 결부되면 갑자기 천덕꾸러기가 된다. 우리가 먹고 남는 것을 던져 주는 게 아니라 흘린 땀의 결실을 나눠 주는 고상한 행동인데 남북 회담장에선 쌀이 북한의 기세를 돋우는 빌미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부의 책임이 없지 않다. 대북 식량 지원은 말 그대로 인도적(人道的)인 것이다. 굶주리는 동포를 어떻게든 살리자는 숭고한 뜻에서 출발했다. “미사일은 어느 누구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고 강변한다. 미사일 발사에 연계해 인도적 지원을 중단한 정부가 사태를 꼬이게 했다.
정부는 하루 속히 인도적 지원을 군사(軍事) 문제와 연계하지 말고 쌀 지원을 해야 한다. 그것은 한 핏줄 단일민족이 굶어 죽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반드시 ‘민족 공멸을 초래할 핵’을 완전 폐기해야 한다. 우리의 인도적 지원을 북한은 ‘선군정치’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까닭이다.
미국은 하루빨리 북핵의 완벽한 폐기정책 ‘CVID’를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 미국은 동맹국으로서 한국을 지킬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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