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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려진 덕성 밝혀야 / 이준구<주필, 시인> |
2007년06월25일(M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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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부정 부패가 끊이지 않는가. 이 나라의 지자체와 공기업이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매우 충격적이다.
이야말로 명덕(明德)이 흐려져 혼덕(昏德)으로 변한 것이다. 다시말해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연의 밝은 덕성이 흐려지고 말았다.
주자(朱子)는 대학(大學)의 핵심이 되는 ‘명덕(明德)’을 이렇게 풀이했다. “명덕(明德)이란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형상은 보이지 않고 공허하다. 하지만 작용과 기능은 영특하고 밝게 나타난다. 설사 일상 생활에서 명덕의 밝음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 해도, 근원적으로 그 빛이 꺼져 완전히 소멸되는 법이 없다. 명덕의 보이지 않는 체(體)에 모든 도리가 갖추어져 있으며, 아울러 그 명덕의 영특한 용(用)은 만사에 적응되고 또 만사를 처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명덕이 잠시라도 흐려지면 지각(知覺)이 없어진다. 지각(知覺)이란 앎이 보편적 진리(眞理)에 대한 깨침으로 연결돼 균형 잡힌 행동을 낳게 될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지각(知覺) 있는 사람은 사물의 전후(前後)와 상하(上下), 경중(輕重)을 가릴 줄 안다. 지각의 동반자가 ‘분수’와 ‘염치’이다. 전자는 자기의 상대적 위치와 역량이 어떤 것인가를 감지할 줄 아는 능력이다. 여기에 한가지를 더하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일 것이다.
명덕(明德)이 아주 흐려진 오늘날의 우리 사회 분위기 속에선 지각, 분수, 염치, 측은지심 같은 말들은 수구파들의 잠꼬대쯤으로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각과 분수, 염치와 측은지심이 사라진 사회는 인간이 사는 사회라기보다 금수(禽獸)들의 세계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맹자(孟子)에 이른바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가 그것이다.
오늘날의 지자체 고위 공무원들이 지각없는 처신을 일삼아 여기저기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모군(某郡)의 과장급 공무원 등 3명은 군(郡) 사업의 용역을 따낸 업체의 돈으로 이른바 ‘공짜 해외 시찰’을 다녀 왔다가 뒤늦게 ‘수뢰’ 혐의로 시비에 휘말렸고, 모시(某市)에서는 국장급 공무원이 수년 전부터 부인과 함께 다단계 판매업체에 몸담아 오면서 부하 직원들을 이 업체에 등록케 하거나 물품 구매를 강권했다 해서 물의를 빚고 있다. 이들 말고도 최근 나사 풀린 공직자들의 염치없는 행위와 추문이 속속 불거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무원들의 잘못된 처신은 엄정히 다뤄져야 한다. 공무를 집행하는 공직자의 행위는 시민 모두의 이익 또는 손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무원에게 품위 유지 조항이 강제되는 것이다. 국민이 낸 세금에 의해 움직여지는 그들이 어떤 개인이나 업체와 이해관계로 얽혀 저지르는 잘못은 비록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가벼이 처리해선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나라의 살림을 도맡은 공기업도 지각없는 행동거지(行動擧止)가 드러나 국민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것은 공기업의 예산집행과 조직 및 인력 관리가 주먹구구 식이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발표한 95개 정부 산하기관의 경영혁신 추진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위법·부당사례 115건이 적발된 이들 공기업에서 국민을 위한 서비스 기관이라는 의식은 실종된 지 이미 오래인 듯싶다. 법도 상식도 그들의 탐욕 앞에는 설 자리가 없다.
간부들이 청탁을 받고 부당하게 신입사원을 채용하는가 하면 상여금을 부당하게 지급하고 비자금을 조성해 접대비와 유흥비로 사용하는 등 예산 낭비와 감독 소홀로 빚어지는 갖가지 비리가 망라돼 있다.
공기업은 사기업에 비해선 효율이 떨어지고 일반 행정 부처에 비해선 정부의 감독과 통제가 느슨한 어정쩡한 중간 지대에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수술을 미룬 채 ‘관행’이란 이름으로 계속돼 왔던 것이다.
결국 감사원이 회초리를 더 높이 드는 수밖에 없다. 공기업뿐 아니라, 그들을 감독하는 부·처·청에 대해서도 감사의 칼날을 들이대야 한다. 기만당한 국민들에 대해 측은지심(惻隱之心)도 나타내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면 상탁 하부정(上濁下不淨)인 것이다. 즉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뜻이다.
정치가 정치답지 않은 데다 정치인이 민생(民生)을 생각하지 않고 당리당략만을 생각하고 있어 국민의 지지도가 땅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모든 것이 결국은 하늘이 부여해준 명덕(明德)이 흐려져 지각(知覺)과 분수, 염치와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작동하지 않는 데 있다.
그러면 지각과 분수, 염치와 측은지심이 상실돼 가는 것을 막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정과 학교에서 ‘인문교육(人文敎育)’을 강화하는 길 밖에 없다고 본다.
인문정신(人文精神)은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의미를 따지는 것이다. 인문교육(人文敎育)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윤리(倫理)와 도덕(道德)의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러한 인문교육이 빈사상태에 빠지고 인문정신의 중요성이 망각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눈앞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행동이 인문적 가치에 앞서게 된다면 시회적 갈등과 충돌의 해소는 요원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인문교육은 우리의 구체적 삶을 질적(質的)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절실히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제대로 된 인문교육은 돈 버는 데 직접 도움을 주지는 못할지라도 인간은 왜 사는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깨우쳐 준다. 문학·역사·철학이 주축을 이루는 인문교육은 삶에 대한 참다운 의의를 깨우쳐 줄 것이다.
미국의 대학들이 위기를 겪으면서 내린 결론은 인문교양교육의 강화였다. 소련 또한 스탈린의 학정(虐政) 시절에도 푸시킨 읽히기를 중단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선진화(先進化)가 새 시대의 구호로 떠오르고 있지만 경제가 아무리 잘되어도 명덕(明德)을 밝히지 못하면 살만한 세상이 못 된다. 따라서 교육인적자원부는 하루속히 ‘인문학 위기’를 십분 인식,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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